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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보다 강렬한 죽음,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 - 밤은 노래한다 - 熱血讀書記열혈독서기

밤은 노래한다밤은 노래한다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히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p.42"

 

이런 책이 있다.

 

읽은 직후엔, 그냥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신없이 읽어내려가지만, 책장을 덮고나면 엄청난 장맛비를 뚫고 간신히 집에 돌아온 느낌을 주는 책 말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사이로 콸콸 역류하는 하숫물을 헤치고, 간헐적으로 번득이는 뇌전과 귀청을 찢는 천둥소리를 동무삼아 발길을 재게 놀려 간신히 집에 도착하면, 그저 따뜻한 국물과 젖은 옷을 벗고 차게 식은 몸을 누일 아랫목만이 그리워진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어떤 길로, 무슨 차를 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왔는지 따위는 새카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일상속에서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아... 이건 이랬구나.

그리고 나서 책을 다시 펴들어 보면,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의 글과, 나의 일상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새로운 쾌감이 밀려온다.

등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 서며, 콧날이 시큰해지는 그런 느낌.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

내 멋대로 그걸 작가와의 교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그냥 글을 읽으면서 잠깐 느끼는 말초적이고 저차원적인 교감이 아닌, 보다 깊은 교감.

 

김연수의 작품들은 내게 그런 느낌을 준다.

아마도 작가에 대한 짝사랑이라고 희롱해도 할 말은 없을터...ㅋㅋ 뭐, 원래 난 짝사랑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어떻게 한반도의 이북을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

한반도의 이남은 정신 없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생소했고, 갑자기 뚝 떨어진 이 자유때문에 남한 사람들은 정말 여러 일들을 겪어댔다. 단지, 소련이 이북을 점령해서, 미국이 남한에 진주해서...라는 말로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역사란게 그리 간단해??

고려시대에도 신라유민인 경주파와 고구려 유민인 서경(평양)파, 거기에 백제유민과 발해유민들까지 정쟁을 일삼았고, 각종 소요가 끊이지 않았던 민족인데, 어찌 그리 간단하게 38선 위쪽은 단칼에 무자르듯 접수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김일성이 순식간에 신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대략적인 답을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어낸 듯 하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던 해에 태어나 1930년대에 인생의 청춘기를 살았던 '김해연' 이라는 인물의 수기 형식으로 쓰여있다.

1930년대 초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 작업을 어느정도 기반에 올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만주를 침공한다.

그리고 만주국을 세우는데, 이 만주국에 대한 내용도 그리 단순하고 간략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이정도로 넘어가자.

(이 작품에서도 그렇게 자세히 다루진 않는다.)

 

주인공 김해연은 어느정도 부유하게 자라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 일본이 세운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에 입사하게 된다.

대련을 거쳐 용정으로 파견된 김해연은 '정희' 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희에 대한 깊은 사랑을 깨달은 찰나,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과 함께 유서와도 같은 서신을 건네받는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한통의 서신으로 인해, 해연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게 된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이 건너간 간도.

간도, 옌벤, 남만주, 연해주등으로 불리우는 이 땅은 그 많은 이름만큼 많은 역사를 갖고있는 곳이라고 한다.

중국, 조선, 러시아의 한 가운데인 간도는 지금도 조선인 자치구가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도 아주 밀접한 곳이다.

또한, 항일 유격대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남쪽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해연.

태어날때부터 이미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애초에 그는 반일감정이나 독립운동따위는 접할 수 없었을터다.

그는 지금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고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평범하게 취업자리를 찾았다.

조선인이라는 식민지인이라는 한계때문에 그가 갈 곳은 만철과 광산밖에 없었고, 측량이라는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그는 만철에 취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조선인으로서 일본 굴지의 기업인 만철에 입사한것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런 해연을 조선인이라고 비웃던 나카지마가 이런 말을 해준다.

 

"아직까지 사람을 죽여본 일은 없겠지? 하지만 만주에 사는한, 너 같은 녀석도 언젠가는 사람을 죽이는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한 번 얘기해보자.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지.

너한테 힌트를 주자면, 죽음이란 그것을 통해 삶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 족한거야. "

p. 24~25

 

항상 살아있는 인간은 어찌나 어리석은지 쉽게 삶을 인지하지 못한다.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죽음을 바란다. 마치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삶의 소중함은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때만이 사무칠 수 있는법. 인간은 이렇게나 어리석고 어리석다. 나카지마는 해연에게 죽음을 겪어본 삶이 얼마나 크게 변화할지 알려준다.

그리고, "너같은 녀석도 언젠가는 사람을 죽이는 날이 오겠지." 라는 이 대사는 해연의 삶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과연 해연은 누구를 죽이게 될까?

 

그리고 나카지마가 덧붙인다.

 

"그러니 시시하게 죽을까 봐 온몸을 떨어대면서 겁을 내느니 사랑을 하라."

p.25

 

그리고 해연은 말한다.

"그렇다면 나도 사랑이라는 걸 한번 해보죠."

그의 말에 나카지마가 대답한다.

"그건 네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야."

p.27

 

이 작품은 중국의 공산당혁명과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 붉은10월 혁명.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구축과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간도의 젊은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0년대의 이야기이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이념전쟁인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니, 그 전 과정들이 단편적으로 들어있다.

역사적인 큰 흐름을 알면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과 더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몰라도 큰 관계는 없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그리고 그 흐름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충돌. 그리고 거기에 쓸려가는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욱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갈려있지 않다. 그 시대, 간도에 거주하는 모든 조선인들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야만 했다.

아니, 거기 사는 것 자체로 이미 그들은 사회주의자. 공산당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로 그냥 자유 민주주의자인 것 처럼 말이다.

 

해연은 고통받아야만 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정희였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리고, 간도에 사는 수많은 조선인들 또한 그랬다.

그들에게는 노후도, 장래도, 미래도, 희망도 없었다. 그냥 살기 위해 오늘을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옆에 있는 동료를 팔아 넘겨야도 했다. 뒤에 있는 동료에게 팔아 넘겨지기도 했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고,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도 보아야 했다. 가족을 팔아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삶에 집착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가장 절대적인 가치였다. 부모를 팔아넘기고, 사랑하는 연인을 팔아넘겨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무엇을 위해서?

이념을 위해서? 독립을 위해서?

정의나 선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선인가?

그런 모든 이념과 가치들이 모호해지는 때에, 과연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좀 끔찍한 상상이지만, 만일 정말 이번 천안함 사태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나 역시 그런 혼돈속에 빠져들터다.

아니, 그런 상상조차 할 필요도 없다.

9.11때 미국의 아프간 보복 침공, 지금 일어나는 천안함 진상규명.

이것들도 정말 너무나 혼란스럽고 혼동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선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내일도 살아있다.

그리고, 만일 선택해야 한다면, 나 역시 살기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살기위해 발악하는 자들을 비웃지 말라.

난 오히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들을 비웃겠다.

삶이 고통스러워 죽음을 택하는 자들 또한 비웃지 말라.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결국 진리는 한가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것이다.

 

아마도, 밤은 해연에게 그렇게 노래했을터다. 죽음은 해연에게 그렇게 노래했을터다.

삶을 열망하라.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열망은 그 자체로 결과이리라. 열망은 단지 열망하는 그 순간에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뿐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나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얻은것이다.

그 댓가가 고통이라면, 그것 또한 행복할 터.

나는 살아있으니.

http://fireflag.egloos.com2010-05-29T15:31:53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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