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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치유, 그 영원한 가족이란 굴레 - 프로즌 파이어-

프로즌 파이어 1프로즌 파이어 1 - 10점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다산책방

"정말 중요한 수수깨끼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해."



더스티의 가족은 더스티의 오빠인 조쉬가 행방불명되면서 완벽하게 바뀌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극심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 결국 집을 떠났고, 사랑하는 부인까지 잃은 아빠 역시 직장마저 잃고 방황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 더스티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빠마저 흔들리는 와중에, 자신마저 정신을 놓아버릴 순 없었다. 고작 열다섯이었던 더스티는 흔들림 없이 강인하게 마음을 다잡았고, 허물어진 가족의 끈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혼란한 아빠는 강인한 딸을 보며 마음을 잡았고, 자신을 버린 아내를 떠나보내고, 자신을 떠난 아들도 떠나보낼 수 있었다.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낸 아빠가 마음을 다잡는데는 2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때쯤 '소년'의 전화가 더스티에게 걸려왔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듯한 소년과의 대화 속에서 더스티는 행방불명된 오빠인 조쉬의 흔적을 느낀다.

자신의 생각을 읽기도 하고, 뭔가 안좋은 소문들이 있으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하얀 소년.

온몸이 눈처럼 하얗고, 눈동자와 머리칼마저 하얀 이 소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며, 과연 더스티의 오빠인 조쉬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의 일원이 된다.

혈연이라는 단순하고도 질긴 이 조합은, 수많은 감정들이 얽히고 설켜 구성원 한명 한명의 인생속에 깊이 자리한다.

그래,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가족간의 사랑 역시 여느 사랑과 마찬가지고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더스티의 오빠인 조쉬에게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항상 비밀을 가지고 있었고, 고집불통에, 문제아였던 아들 조쉬. 하지만 가족 모두 그를 사랑했다.

이것이 가족간에 가지고 있는 혈연이라는 이름이자, 사랑이라는 이름의 굴레이다.

아무리 자기를 속이고, 마음에 상처를 주고, 끊임없이 뒷치닥거리를 하게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식을 진심으로 미워할 수 없다.

그 대상이 오빠나 동생과 같은 형제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속을 썪혀도 자식은 자식, 오빠는 오빠, 자매는 자매이니까.

단순히 미워하고 버릴 수 있는 대상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극도로 미워하게 되어도, 진심으로 버릴 수 없다. 진심으로 내칠 수 없다.



하물며, 더스티는 오빠인 조쉬를 사랑했다.

하지만 조쉬는 더스티에게 단 한마디만을 남기고 세상에서 꺼져버린 듯 눈 앞에서 사라졌다.

"미안해, 꼬마 더스티. 잘있어, 꼬마 더스티."

더스티는 사랑했던 오빠를 잃어버린 즉시,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상처가 있는 자리를 덮고 덮어버렸다.

마치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상처따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잊고 싶었을 것이다.

꼭꼭 덮어두고, 잃어버리면 언젠가는 정말 다 나아서 깨끗해지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스티의 아빠와 엄마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것을 자꾸 들여다 보고, 순간적으로 더욱 큰 고통을 주는 치료를 감내하는 동안에 더스티는 상처를 숨기고 외면해 버렸다. 그것이 더 큰 독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을 어린 더스티는 전혀 알지 못했을테니까.

아빠와 엄마가 아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동안 더스티는 오빠를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사랑한다.

왜?

왜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까?

전에 다른 리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사람은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고, 외로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때문에 사람은 끊임없이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한다.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잊지 않으려 한다.

외로움을 잊는 가장 쉽고도 편한 방법을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이다.

자신을 잊고 남을 바라본다.

타인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자신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사랑이란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랑을 잃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잃는 순간 외로움은 새삼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극도의 소외감. 고립감. 고독감. 외로움.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을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외로움을 깨치고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가는 소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팀 보울러 특유의 숨막힐듯 치밀한 심리묘사는 이 작품속에서도 아주 압권이다.

시종일관 호흡을 가쁘게 만들고 끊임없이 독자들을 몰아치는 서술법은 초자연적이고 조금은 호러틱하기까지 한 '소년' 의 신출귀몰한 행태와 더불어 상당한 흡인력을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하고, 언젠가는 그 사랑을 잃는다.

어떤 식으로든 사랑을 잃는 과정은 큰 상처를 남기고 고통을 받는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누구나 다 겪는 상처와 고통.

하지만, 잊지 말기를.

그 어떤 상처와 고통들도 다 지나가리라는 것을.

어쩌면 나도, 당신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http://fireflag.egloos.com2010-06-27T08:44:420.31010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인연의 순간 -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熱血讀書記열혈독서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8점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이덴슬리벨

" 혹시 새로운 누군가에게 눈을 뜨거나 마음이 끌릴 때,

갑자기 어디를 가건 그 사람 이름이 튀어나오는 걸 알아챈 적이 있나요?

내 친구 소피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르고 나와 친한 심플리스 목사님은 은총이라 하십니다.

목사님의 설명을 빌리자면 새로운 사람이나 사물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 일종의 에너지를 세상에 내뿜고,

그것이 '풍부한 결실' 을 끌어당긴다고 해요."

p. 180

 

 

제 2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화마로 휩쓸고 간 직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필치의 전쟁 칼럼으로 런던의 독자들을 사로았던 줄리엣 매커너는 우연히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잉글랜드에 속한 '채널제도' 의 '건지'라는 이름을 가진 섬에서 온 편지였다.

 

자신을 '도시' 라고 밝힌 편지속의 남자는 우연하게도 줄리엣이 헌책방에 팔았던 책을 손에 넣게 되어서 편지까지 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런 우연을 시작으로 줄리엣은 도시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고, 건지섬의 문학회에 대해 알게 된다.

마침 전쟁에 대한 새로운 칼럼을 제안받은 줄리엣은 건지섬의 문학회를 소재로 삼기로 하고, 건지섬의 문학회원들 역시 그녀의 생각에 동참하고 도와주게 된다. 물론, 편지로.

 

건지섬의 문학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의 회원들 한명 한명들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 줄리엣.

독일군의 지배를 받았던 건지섬의 순박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그리고, 줄리엣과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

 

 

 

'인연' 이란 대부분 '우연' 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특수한 무언가. 불교에서 인연은 전생들을 통해 쌓아온 많은 것들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렇듯,  '우연' 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억울할 정도로 특별한 순간을 통해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은 시작된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줄리엣과 도시 역시 기적에 가까운 우연을 통해 첫 편지를 나누게 된다.

만약, 인연을 관장하는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신의 손길은 딱 거기까지였다.

줄리엣이 헌책방에 팔았던 책을, 건지섬의 도시의 손에 닿게 해준 것.

도시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용기를 내어 펜을 들었고, 그 편지는 무사히 바다를 건너, 우체부의 손에 들려, 무사히 줄리엣의 손에 닿았다. 그래, 어쩌면 거기까지도 신의 손길이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우편 수송선이 바다에 가라앉았을 수도 있고, 우체부가 실수로 도시의 편지를 줄리엣에게 전해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줄리엣이 너무 바빠서 도시의 편지를 미처 읽지도 못했을수도 있으니까.

 

여하튼, 약간의 사람의 힘과, 신의 손길과도 같은 절묘한 타이밍을 통해 도시와 줄리엣은 처음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또한 절묘한 타이밍으로, 줄리엣에게 새로운 원고 청탁이 들어왔고, 도시의 편지 역시 그 때 도착하였고, 줄리엣은 그 내용을 통해 청탁받은 원고의 소재를 찾아내게 된다.

만약 줄리엣이 청탁받은 원고의 내용이 전쟁이 아니라 패션이나 문화였다면, 도시의 편지는 그냥 그렇게 묻혀졌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 속에는 이렇게 디테일한 관계설정의 과정이 여성 특유의 세밀함으로 부드럽게 펼쳐져 나간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역시 대단히 디테일해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굉장히 리얼하다.

정말 등장인물들이 실존하는 것 같고, 편지도 실제로 주고받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이다.

 

작가 역시 철저하게 인물간의 관계에만 집중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도 별로 없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일상들이 특유의 유쾌함과 경쾌함으로 끊임없이 즐거움을 주고, 몰입감을 더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 을 갈망한다. 타인에 대해 큰 상처를 입고, 그 배신감에 치를 떨어본 사람도 결국은 다시 타인을 갈구한다.

그래. 그것이 사람이 태생적으로 외롭다는 증거이리라.

만약 사람이 외롭지 않은 존재라면 그렇게까지 타인을 갈망할 리 없으니까.

사람을 죽이는 가장 무서운 무언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외로움' 을 꼽겠다.

사람은 지켜야 할 '타인' 이 있을때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치명적인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해도, 자기 자신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보다 치열하게 남은 삶을 살아가고 때론 그 치명적인 암도 이겨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타인' 이 없이 홀로 외롭게 투병하는 사람은 보다 일찍 삶을 포기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외롭고 고독한 것이 맞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를 찾고 사랑을 찾는다.

만약 사람이 외롭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다면, 그냥 혼자 살면 될테니까.

누구에게나 마음 붙일곳이 필요하고, 그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타인' 이다.

그 타인이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가장 미워하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가장 불신하던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인연' 이란. 사람사이의 '타이밍' 이란 누구에게나 어떻게든 찾아올 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타인' 은 나의 '인연' 이 될 확률은 모두 동등하다. 

 

줄리엣과 도시가 그렇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런던의 잘나가던 프리라이터와, 영국 끄트머리 외딴 섬의 돼지치는 농부가 말이다!

 

 

 

ps.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편지 한장이 조금 사족같이 느껴진다.

'미스 이솔라 프리비의 탐정수첩' 에서 끝났어도 좋았을 걸.

 

http://fireflag.egloos.com2010-06-22T04:54:540.3810

의식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진실 - 히든 브레인

히든 브레인히든 브레인 - 10점
샹커 베단텀 지음, 임종기 옮김/초록물고기

20세기 초,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해 끄집어낸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수많은 심리학자들은 끊임없이 무의식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하며 엄청난 지식들을 축적시켰다.

샹커 베단텀이라는 인도계 미국인 학자는 인간이 잘 저지르는 무의식적 편향에 의한 치명적인 실수들을 집대성해 놓았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지은이인 샹커 베단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적' 이라고 믿으며 '합리적' 이라고 믿는, '윤리적' 이라고 믿는 모든 일들에 사실은 '무의식적 편향' 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충실하고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



논문처럼 중심 카테고리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작은 카테고리들. 그리고, 각종 참고 사례들과 저명한 학자들의 주장들과 함께 섞이며 생각보다 흡인력 있는 문장을 보여준다. 우리 생활에 밀접한 영향이 있는 사례들이 실려있어서 그런지 전문 서적임에도 정말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맛이 있다.



'무의식적 편향' 에 대해 저자가 정의해 놓은 것을 잠깐 살펴보려면, 저자가 예로 든 자전거타기가 가장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인간의 뇌에는 '의식적인 뇌'와 '숨겨진 뇌'가 있다.

우리가 자전거 타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일단 의식적인 뇌의 역할이 필요하다.

안장에 올라 엉덩이를 걸치고, 페달을 밟고, 양 팔에 힘을 줘서 핸들을 잡는다. 페달링에는 양 발에 어느정도의 힘을 주어 밀어야 하고, 오른발로 페달을 미는동안, 핸들을 잡고있는 왼손에 힘을 주어 체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반대편을 밀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우뚱 거리기도 하고, 핸들을 좌우로 흔들거리기도 한다.

'중력, 균형, 가속도에 대한 상호작용을 터득하면, 당신의 의식적인 뇌는 자전거 타기를 숨겨진 뇌의 영역으로 밀어낸다. 당신은 더이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제 그 행동은 자동으로 일어난다.'p.37



그렇다. 나는 자전거 타기를 무척이나 즐기는데, 정말 자전거를 타는동안, 중력과 가속도, 균형에 대해 머릿속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두발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내 체중을 한쪽에 쏠리지 않게 조정할 수 있는지 머리를 써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 나도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날이 있었다. 내 의식적인 뇌는 그때 그걸 충분히 익힌 뒤에, 그 작업을 숨겨진 뇌로 밀어놓은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자동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지만, 그 동안에도 나의 '숨겨진 뇌' 는 끊임없이 중력과 가속도, 균형에 대해 계산하고 몸을 반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예는 '언어' 를 들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언어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 단어의 순서나 조합을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우린 자동으로 말을 한다.

하지만, 외국인과 대화를 할 때를 생각해보자. 의식적으로 단어의 의미와 순서와 조합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그 규칙을 익힌 뒤라면, 역시 숨겨진 뇌의 영역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친구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숨겨진 뇌는 끊임없이 단어의 의미와 순서, 조합을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난 이 숨겨진 뇌의 역할에 대해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쳐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로. 의식하며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숨겨진 뇌' 에 의해 좌우 된다.

저자는 '조종당하고 있다' 고 말 할 정도이다.



얼핏 보면, 뭐야 무의식적 편향은 좋은 역할 하는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무의식적 편향은 때론 결백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징역 정도에 합당한 죄를 지은 사람을 사형을 시켜버리게도 한다.

그 뿐인가. 자살 테러를 일으키게도 하고, 뽑아서는 안될 정치가를 뽑기도 한다. 자살을 하는것도, 어쩌면 우울증의 원인도 무의식적 편향의 영향일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우리는 '숨겨진 뇌'에 조종당하고 있는가?

저자는 그것을 '무의식적 편향'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의 사법제도, 성차별과 인종차별, 자살테러와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적 편향' 에 의한 수많은 오류들을 지적해 낸다. 그리고, 그 설득력은 실로 엄청나서, 정말 소름이 쫙쫙 끼칠 정도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무의식의 편향' 을 '의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편향에 의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지만, 의식의 뇌는 그 판단이 '정의롭고 윤리적이며 합리적이다' 고 말한다는 것이다.

절망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실수를 하면서도, 실수한 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실수를 위해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해야 하는가?

무의식적 편향을 통해 우리를 조종하는 숨겨진 뇌를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일단 첫번째는 '숨겨진 뇌' 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넓은 시야로 주변 사람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언제나 이성의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 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애티커스' 변호사는 이성에 판단에 귀를 기울이고, 무의식적 편향에 맞서 이긴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하던 그 시기에 담대하게 그에 맞선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양심과 이성에 몸을 맡겼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양심과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런다면 당신은 숨겨진 뇌에 조종당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테니.

http://fireflag.egloos.com2010-06-11T14:48:530.31010

꿈의 주인. 그의 환상적인 이야기 - 샌드맨 - 熱血讀書記열혈독서기

The SandMan 샌드맨 1The SandMan 샌드맨 1 - 10점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시공사

영국 근교의 한 저택에 초로의 노인이 방문했다.

저택의 주인인 버제스는 노인의 방문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했지만, 놀랐다는 듯이 그를환대했다.

초로의 노인. 해서웨이 박사는 버제스에게 마법서를 건네준다.

"정말 죽음을 잡을 수 있겠소?"

"결사단에게 필요한건 '막달린 마법서' 뿐이었지. 의식은 다음 보름달이 떠야 열 수 있네.

그리고 나면 다시는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되는거야."

 

해서웨이 박사에게 막달린 마법서를 건네받은 버제스와 그의 결사단은 의식을 시작한다.

그들은 '죽음' 을 지상에 묶어둘 작정이었다.

결계를 위한 마법진은 조잡했지만 기능을 했고, 소환을 위한 주문 역시 그러했다.

어둠속에서 어떤 존재가 지상으로 소환되었고, 결계는 그를 확실히 붙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죽음을 불러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의 형제인 '꿈' 을 불러내고 만 것이었다.

뜻밖의 소환과 봉인에 당황한 '꿈' 으로부터 붉은 수정과 꿈의 가루, 전투헬멧을 빼앗은 버제스와 결사단은 이 실패에 안타까워하는 한편,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를 잡아 가두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결계 수정안에 봉인당한 꿈은 분노했지만 무력했다. 그는 침묵을 무기로 60년을 봉인안에 갖혀 있었다.

간신히 결계를 빠져나오게 된 꿈은 우선 자신의 힘을 되찾아야 했다.

인간세계 어딘가에 있는 전투헬멧과 붉은 수정. 그리고 꿈의 가루를 되찾아야 했다.

 

그가 행방불명된 60년동안 꿈의 세계엔 어떤 일들이 일어났으며, 인간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는 꿈의 주인이었다. 지금도 역시 그는 꿈의 주인이다.

힘을 잃은 꿈의 주인.

 

 

 

 

 

 

샌드맨 1권이 처음 나온 작년에 수두룩하게 신청했던 리뷰에서는 족족 다 떨어지고, 언제 여유되면 1권씩 차근차근 사모아야지~ 했던 샌드맨 1,2권이 기어코 내 손안에 들어왔다.

일단 이런 리뷰의 기회를 준 리브로 코믹에 감사감사~~~ 앞으로도 열심히 리뷰 올리겠음둥.ㅋㅋㅋ

이 리뷰는 어차피 Yes24 와 알라딘, 인터파크 도서에도 다 올리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이런 기회를 준 건 리브로코믹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겠다. 그리고, 이런 좋은 작품을 출판하고, 역시 리뷰의 기회를 준 시공사에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일단 닐 게이먼은 손꼽히는 환상문학의 대가임은 알만한 사람을 다 알 것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장편들은 일단 접어두고, 소개 된 것들만 나열해도, '스타 더스트' '황금 나침반 시리즈' '신들의 전쟁' '그레이브야드 북' ,'인터월드'... 등이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에선 그의 명성만큼 많은 책이 팔리지는 않은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이런 정통 장르문학은 미스테리, 추리물을 제외하곤 외국 작가의 작품이 크게 사랑받지 못한다.

하물며, 이미 일본식 망가와 웹툰에 익숙해져있는 만화독자층의 틈새를 뚫고 이런 작가주의로 점철된 '그런 작가' 의 '이런 그래픽 노블' 이 사랑받기는 쉽지 않을터다.

 

그래픽 노블은 말 그대로 그림'소설' 이다.

그래픽 노블의 만화는 '내용' 을 위한 그림이다. 글과 그림 모두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참 재미를 깨달을 수가 없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컷 속에는 수많은 문학적 장치들이 숨어있다.

게다가 작가주의 작품으로 유명한 '버티고VERTIGO' 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온 이 작품은 불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림과 글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야기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 일반 서적을 접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미국이나 유럽만화의 문법과, 일본과 우리만화의 문법은 그 자체가 완벽히 다르다.

영미문화권의 문법과 중국문화권의 문법이 다른것처럼 서양의 만화 -그래픽 노블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1권 '서곡과 야상곡'  2권 '인형의 집' 은 지상에 묶여있는 동안 샌드맨이 잃어버린 자신의 소유들을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환상적인 내용이지만, 동화같이 화사하고 밝지는 않다.

꿈은 '잠' 과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잠' 은 '죽음'과 유사하다. 어떤 작가는 잠자는 행위를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많은 지역의 설화들은 잠과 죽음을 동일시 하기도 하고, 신화에서도 잠과 죽음이 형제나 자매처럼 밀접한 관계라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아주 어두운 편이다.

게다가 스토리를 담당한 닐게이먼이라는 작가의 성향 자체가 밝고 귀여운 동화같은 판타지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고 깊은 어두움을 파헤치는 듯한 잔혹한 판타지에 재능을 드러내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 작가의 손에서 창조된 샌드맨은 필연적으로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어둡고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독자들의 어두운 감성을 집적대면서 흡인력있게 펼쳐진다.

그로테스크한 그림체 역시 아주 잘 어울린다. 

 

또한 신도, 초월자도 아닌 꿈이나 죽음. 욕망이나 질투 등의 존재들의 등장도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다.

 

조금은 접하기 어렵지만, 색다른 즐거움을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명작중의 명작.

  

 

 

그로테스크한 샌드맨의 모습과 자매인 '죽음' 과 대화하는 샌드맨.

http://fireflag.egloos.com2010-06-03T07:47:490.31010

삶보다 강렬한 죽음,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 - 밤은 노래한다 - 熱血讀書記열혈독서기

밤은 노래한다밤은 노래한다 - 10점
김연수 지음/문학과지성사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히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p.42"

 

이런 책이 있다.

 

읽은 직후엔, 그냥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신없이 읽어내려가지만, 책장을 덮고나면 엄청난 장맛비를 뚫고 간신히 집에 돌아온 느낌을 주는 책 말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사이로 콸콸 역류하는 하숫물을 헤치고, 간헐적으로 번득이는 뇌전과 귀청을 찢는 천둥소리를 동무삼아 발길을 재게 놀려 간신히 집에 도착하면, 그저 따뜻한 국물과 젖은 옷을 벗고 차게 식은 몸을 누일 아랫목만이 그리워진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어떤 길로, 무슨 차를 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왔는지 따위는 새카맣게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일상속에서 문득문득 생각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아... 이건 이랬구나.

그리고 나서 책을 다시 펴들어 보면,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의 글과, 나의 일상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 새로운 쾌감이 밀려온다.

등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 서며, 콧날이 시큰해지는 그런 느낌. 몸이 부르르 떨리는 느낌.

내 멋대로 그걸 작가와의 교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그냥 글을 읽으면서 잠깐 느끼는 말초적이고 저차원적인 교감이 아닌, 보다 깊은 교감.

 

김연수의 작품들은 내게 그런 느낌을 준다.

아마도 작가에 대한 짝사랑이라고 희롱해도 할 말은 없을터...ㅋㅋ 뭐, 원래 난 짝사랑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어떻게 한반도의 이북을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

한반도의 이남은 정신 없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생소했고, 갑자기 뚝 떨어진 이 자유때문에 남한 사람들은 정말 여러 일들을 겪어댔다. 단지, 소련이 이북을 점령해서, 미국이 남한에 진주해서...라는 말로는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역사란게 그리 간단해??

고려시대에도 신라유민인 경주파와 고구려 유민인 서경(평양)파, 거기에 백제유민과 발해유민들까지 정쟁을 일삼았고, 각종 소요가 끊이지 않았던 민족인데, 어찌 그리 간단하게 38선 위쪽은 단칼에 무자르듯 접수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김일성이 순식간에 신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대략적인 답을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어낸 듯 하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던 해에 태어나 1930년대에 인생의 청춘기를 살았던 '김해연' 이라는 인물의 수기 형식으로 쓰여있다.

1930년대 초반.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 작업을 어느정도 기반에 올리고 그것을 발판으로 만주를 침공한다.

그리고 만주국을 세우는데, 이 만주국에 대한 내용도 그리 단순하고 간략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이정도로 넘어가자.

(이 작품에서도 그렇게 자세히 다루진 않는다.)

 

주인공 김해연은 어느정도 부유하게 자라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 일본이 세운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에 입사하게 된다.

대련을 거쳐 용정으로 파견된 김해연은 '정희' 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정희에 대한 깊은 사랑을 깨달은 찰나, 그녀가 자살했다는 소식과 함께 유서와도 같은 서신을 건네받는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한통의 서신으로 인해, 해연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게 된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조선인들이 건너간 간도.

간도, 옌벤, 남만주, 연해주등으로 불리우는 이 땅은 그 많은 이름만큼 많은 역사를 갖고있는 곳이라고 한다.

중국, 조선, 러시아의 한 가운데인 간도는 지금도 조선인 자치구가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과도 아주 밀접한 곳이다.

또한, 항일 유격대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남쪽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해연.

태어날때부터 이미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애초에 그는 반일감정이나 독립운동따위는 접할 수 없었을터다.

그는 지금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고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평범하게 취업자리를 찾았다.

조선인이라는 식민지인이라는 한계때문에 그가 갈 곳은 만철과 광산밖에 없었고, 측량이라는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그는 만철에 취직할 수 있었다.

오히려 조선인으로서 일본 굴지의 기업인 만철에 입사한것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런 해연을 조선인이라고 비웃던 나카지마가 이런 말을 해준다.

 

"아직까지 사람을 죽여본 일은 없겠지? 하지만 만주에 사는한, 너 같은 녀석도 언젠가는 사람을 죽이는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다시 한 번 얘기해보자.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지.

너한테 힌트를 주자면, 죽음이란 그것을 통해 삶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만으로 족한거야. "

p. 24~25

 

항상 살아있는 인간은 어찌나 어리석은지 쉽게 삶을 인지하지 못한다.

조금만 고통스러워도 죽음을 바란다. 마치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삶의 소중함은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때만이 사무칠 수 있는법. 인간은 이렇게나 어리석고 어리석다. 나카지마는 해연에게 죽음을 겪어본 삶이 얼마나 크게 변화할지 알려준다.

그리고, "너같은 녀석도 언젠가는 사람을 죽이는 날이 오겠지." 라는 이 대사는 해연의 삶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과연 해연은 누구를 죽이게 될까?

 

그리고 나카지마가 덧붙인다.

 

"그러니 시시하게 죽을까 봐 온몸을 떨어대면서 겁을 내느니 사랑을 하라."

p.25

 

그리고 해연은 말한다.

"그렇다면 나도 사랑이라는 걸 한번 해보죠."

그의 말에 나카지마가 대답한다.

"그건 네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야."

p.27

 

이 작품은 중국의 공산당혁명과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 붉은10월 혁명.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구축과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간도의 젊은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0년대의 이야기이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이념전쟁인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니, 그 전 과정들이 단편적으로 들어있다.

역사적인 큰 흐름을 알면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과 더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몰라도 큰 관계는 없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그리고 그 흐름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충돌. 그리고 거기에 쓸려가는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욱 크게 와닿기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갈려있지 않다. 그 시대, 간도에 거주하는 모든 조선인들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야만 했다.

아니, 거기 사는 것 자체로 이미 그들은 사회주의자. 공산당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로 그냥 자유 민주주의자인 것 처럼 말이다.

 

해연은 고통받아야만 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정희였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리고, 간도에 사는 수많은 조선인들 또한 그랬다.

그들에게는 노후도, 장래도, 미래도, 희망도 없었다. 그냥 살기 위해 오늘을 살았다.

살아남기 위해 옆에 있는 동료를 팔아 넘겨야도 했다. 뒤에 있는 동료에게 팔아 넘겨지기도 했다.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고,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도 보아야 했다. 가족을 팔아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삶에 집착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삶 그 자체가 가장 절대적인 가치였다. 부모를 팔아넘기고, 사랑하는 연인을 팔아넘겨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무엇을 위해서?

이념을 위해서? 독립을 위해서?

정의나 선을 위해서?? 그 어떤 것이 정의이고, 어떤 것이 선인가?

그런 모든 이념과 가치들이 모호해지는 때에, 과연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좀 끔찍한 상상이지만, 만일 정말 이번 천안함 사태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나 역시 그런 혼돈속에 빠져들터다.

아니, 그런 상상조차 할 필요도 없다.

9.11때 미국의 아프간 보복 침공, 지금 일어나는 천안함 진상규명.

이것들도 정말 너무나 혼란스럽고 혼동된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선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나는 살아있고, 내일도 살아있다.

그리고, 만일 선택해야 한다면, 나 역시 살기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살기위해 발악하는 자들을 비웃지 말라.

난 오히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들을 비웃겠다.

삶이 고통스러워 죽음을 택하는 자들 또한 비웃지 말라.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결국 진리는 한가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것이다.

 

아마도, 밤은 해연에게 그렇게 노래했을터다. 죽음은 해연에게 그렇게 노래했을터다.

삶을 열망하라.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열망은 그 자체로 결과이리라. 열망은 단지 열망하는 그 순간에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뿐이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나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얻은것이다.

그 댓가가 고통이라면, 그것 또한 행복할 터.

나는 살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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